선택 (골방말씀 묵상)
[선택]
지금까지 골방말씀 필자는 앞서 히브리서 초반부를 다루다가 창세기 41장까지 요셉이 총리가 되는 요셉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다시 히브리서 10-13장을 다루었다. 그리고 다시 창세기 42장부터 요셉과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사실 이러한 플롯에 대해 필자의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의 히브리서와 요셉 이야기의 묵상을 통해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일관된 메세지를 발견했다. 고난이 있는 현실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에게 “나는 누가이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정체성과 주체성 묻고 계신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와 칸트 중심의 이성적 관찰과 합리성을 강조하는 근대철학 이후 20세기 니체와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실존주의가 철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실존주의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다. 인간은 선택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지만 선택의 자유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현대철학의 근간이 되는 실존주의와 이후 이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수많은 현대인들의 사고에 영향을 주었다. 현대 철학 중 대표적인 특징은 사회 시스템을 이루는 자유주의나 사회주의같은 이념과 같은 사상적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민주주의나 자유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우리의 실존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며 이러한 현대 철학 사조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실존주의나 현대철학은 그동안의 보수적이고 세뇌적이고 율법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기독교에 대해 반하여 생긴 철학으로 대부분 무신론이나 반기독교적인 아이디어를 품고있다.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니체는 권력화되고 세속화된 기독교에 대해 통령하게 비판했다. 사실 세계사와 연결된 서양철학의 흐름과 니체와 같은 사상가들의 본질적으로 던졌던 질문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그들이 기독교를 비판했다정도의 정치적 해석만 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나 기독교에 반하는 현대 철학을 옹호하는게 아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지배하던 서양 사회에서 그들이 왜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 사상은 엄청 깊고 복잡하고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의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그는 똑같은 해석, 똑같은 설명, 누구나 똑같아져야 된다고 주장하는 종교, 도덕, 민주주의, 공산주의. 이런 것들은 결국 모든 것이 평범해져야 된다고 강제하며 문화를 따분하게 만들고 삶을 권태롭게 한다. 니체는 이런 사회가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책임감있는 개인’이 기존 사회의 가치관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우리사회는 그것을 허용해주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사실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하게 된 기독교인들이 던져야 하는 질문들을 현대 철학자들이 대신 던져준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속화되고 권위주위에 빠진 종교는 인간의 사고에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며 강요할 뿐이다. 주변에도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하나님을 잘 모르고 종교적인 기준에 얽매여 비판적인 사고에만 빠져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주님을 진실로 영접한 자는 자유 안에서 질문하고 선택하며 하나님께 빚어지기 시작한다.
한국에 살고 있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한국의 기독교는 지극히 세속화되고 정치의 도구로 사용되는 현실을 목격한다. 주님을 믿는데도 우리는 현실의 것만 구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유다와 같은 성숙한 자로 변화되어야 한다. 요셉 앞의 유다의 항변의 연설을 보면 그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생각과 행동이 사랑과 책임을 담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다.
하나님은 창세기와 히브리서의 묵상 속에서 고난 속에 탄식하고 있는 나에게 물으셨다. “너는 누구이고, 지금 왜 살고 있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 고난속에 이러한 질문들을 발견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과 인격의 수준이 당신과 같은 레벨에 도달하기를 원하신다. 주님과 대등한 인격으로 마주할 수 있는 성숙한 영혼으로 빚어가시고자 하신다. 인생에 수많은 선택이 있다. 그 선택에는 책임이 있고, 이어질 결과에 대한 불안도 있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와 주체성이 있다는 뜻이다. 애굽의 노예에서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킨 하나님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선택하게 하신다. 너희는 자유인이다. 자유인으로서 합당한 선택하기를 원한다. 오늘 유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멋진 선택을 한다. 더이상 믿음없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선택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한다.
오늘 하루 주님께 나의 마음을 드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그리고 군부대에서 기독교를 궁금해하는 후임들이 있는데 전역하기 전까지 친구들과 소그룹처럼 시간을 갖고 주님을 잘 알려주려고 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