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실체성 (창세기 41:41-57)

[믿음은 실체성: 창세기 41장 41절~57절]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로는 그를 총리로 세우는 데에 그의 국적이나 과거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감성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요셉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고백합니다. 고백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입니다. 요셉은 17살 때 환상적인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에게 어떤 신비한 능력을주시는 것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고난의 상황을 통해 그를 수고하게하여 만들어 가십니다.

요셉의 삶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묵상해보았습니다. 어제 묵상했던 상식과 믿음에 관한 주님은 나의 최고봉 말씀이 오늘 본문에 깊은 insight를 주었습니다.

상식과 상반되는 믿음은 광신이고 믿음에 상반되는 상식은 이성주의입니다. 믿음의 삶은 이 두가지를 바른 관계로 인도합니다. 자연적 세계와 연결된 상식과 영적인 세계에 연결된 믿음은 같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말씀은 상식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 계시인 것입니다. 계시는 상식이 닿을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증명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영역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추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좋은 일을하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실체가 현실로 드러나려면 믿음은 삶에서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믿음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핍박과 조롱을 당해야 할수도 있습니다. 소년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적인 꿈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이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그의 꿈에 대한 믿음을 이해하지 못한 형들은 그에게 고난을 주게 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 바로 이해가 되셨습니까? 요셉의 삶이 이 말씀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기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겪은 고난의 과정들 속에서 허투로 살지 않고 열심으로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총리됨은 하나님께서 고난의 모든 순간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룬게 하신 것입니다. 상식과 현실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는 이상적인 믿음을 변화시켜서 현실적인 실체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목적중 하나는 이상적인 믿음이 요셉처럼 주의 자녀들 안에서 실체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상식과 동떨어진것이 아니라 상식이 작동하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음은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라 상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식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진리를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실질적 경험 가운데 증거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의 믿음을 인격적 소유로 바꾸려면 ‘가끔’이 아니라 ‘항상’싸워야합니다. 요셉은 끊임없는 고난의 연속의 연속인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해 상황을 조성하시고 요셉처럼 우리를 그 속으로 밀어넣으십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속성은 믿음의 대상을 실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의 신앙의 삶이 그동안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없는 추상적으로만 다가오는 말씀에 허우적대며 의무와 강박으로 가득찬 종교적인 삶이었습니까? 만약 이러한 상황가운데 고난이 시작된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의 막연했던 믿음의 실체를 현실로 드러내려하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까지 그분은 단지 추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우리는 믿음을 통해 실제를 소유하게 도고 이때 믿음은 무한하게 됩니다. 믿음은 성령의 능력에 의해 사람의 전 인격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