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음란의 죄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39:7-19)
[하나님과 음란의 죄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39장 7-19절
38장에서 유다는 공허속에 음란의 죄를 찾아가서 타락합니다. 반면 39장에서 요셉은 피할 수 없는 음란의 유혹을 뿌리칩니다.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명확히 분별했고 피했습니다.
얼마전 목사님의 설교가 떠올랐습니다. “성적인 문제에 관하여서는 설교하기 참 쉽지 않은데, 교인들 개인의 민감한 문제를 건드릴 수 있고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조차 성적인 문제에서 자유하지 못한 현실입니다. 음란이 세상의 문화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이 더이상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음란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무너뜨립니다.
하지만 음란의 죄가운데 빠져 있다면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 단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하나님과 음란은 절대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은 눈과 귀를 하나님께 드리는 싸움입니다. 우리의 눈과 귀와 생각이 음란 가운데 있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음란의 죄에 관하여 각자에게 참으로 마음이 어렵게 다가오는 현실입니다. 음란의 죄를 이겨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우리는 연약하기에 번번히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알아야 될 사실은 우리는 절대로 음란의 죄를 이길 수 없고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오늘 본문에 답이 나와있습니다. 요셉처럼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될 부분은 “하나님께” 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하나님 앞에”라는 말로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음란의 죄를 짓겠습니까!
연약한 우리는 음란의 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은 죄 또한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동행은 개인의 자유이고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음란의 죄에 무너진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어있지 않은 죄의 결과입니다. 더이상 연약하다고, 기본적인 욕구라고 핑계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지 되돌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눈과 귀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지금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면, 더이상 죄의 사슬에 얽매여 있는것이 아닌 죄에 대해 자유한 삶을 살 수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시며, 우리를 예수님 답게 빚어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