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목요일 세족식 묵상
예수님께서는 고난주간 주일에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순간부터 목요일 밤까지 연일 분주한 사역을 이어 가셨습니다. 입성하신 다음 날 성전 마당에서 상인들과 환전상들을 쫓아내시며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회복하셨고(마태복음 21:12–13), 화·수요일 동안에는 성전과 인근 골방들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최후 심판, 그리고 참된 제자의 삶에 관해 가르치셨습니다(마태복음 21–23장, 마가복음 11–12장, 누가복음 20–21장). 수요일 밤에는 특별한 공적 기록은 없으나 제자들과 함께 머물며 다가올 고난을 준비하신 것으로 전해집니다.
목요일 저녁,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마가의 다락방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유월절 식사를 베푸셨습니다(마태복음 26:17–29).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은 먼저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동이신 뒤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요한복음 13:4–5). 당시 발 씻김은 종의 몫이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종의 형체’를 가지셨음을 드러내 보이시며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에 묻은 먼지를 직접 씻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않겠다”고 거절하자,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8)고 단언하셨고, 끝내 베드로는 손과 머리까지 씻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요 13:9).
예수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으니 온 몸이 깨끗하다”(요 13:10)고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이미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영적으로 정결함을 입었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모두 다 깨끗하지 아니하다”(요 13:11)고 덧붙이신 것은, 그 중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입니다(요 13:2). 이 일은 겸손한 섬김의 본을 보이시는 동시에, 그 사랑이 배반과 고통을 감수하는 길임을 예고합니다.
만찬이 끝난 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고(마태복음 26:36–46), 곧 유다의 배반으로 잡히시며 공적 사역의 막을 내리셨습니다(마태복음 26:47–56). 이 목요일 밤의 발 씻김은 예수님께서 곧 자신이 이루실 구속 사역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직접 보여 주신 사건으로, 우리에게도 겸손과 섬김, 그리고 자신의 온전한 정결을 주시는 사랑의 본질을 생각하게 합니다.